술라의 일생
기원전 138년 경 – 로마에서 태어남
기원전 107년 – 가이우스 마리우스의 부관이됨
기원전 106년 – 유구르타와의 전쟁 종결
기원전 104년/기원전 103년 – 마리우스의 부하로 갈리아 정벌 참가
기원전 103년 – 퀸투스 루타티우스 카툴루스의 부하로 갈리아 정벌 참가
기원전 101년 – 킴부리 부족을 대패시킴
기원전 94년 – 법무관 다선
기원전 93년 – 킬리키아의 총독
기원전 91년/기원전 88년 – 동맹시 전쟁의 장군으로 참가
기원전 88년 – 폼페이우스 루푸스와 집정관 취임
로마로 진격하여 마리우스파 축출
기원전 87년 – 미트라다테스 6세의 정벌에 사령관으로 임명
기원전 86년 – 아테네 공격
기원전 84년 – 소아시아 서부에서 미트라다테스군 격파, 아시아 속주 재조정
기원전 83년 – 이탈리아로 귀환하여 두번째 로마 진격
기원전 82년 – 독재관에 임명됨
기원전 80년 – 독재관 사퇴후 메텔루스 피우스와 집정관 취임
기원전 79년 – 정계에서 완전히 은퇴
기원전 78년 – 사망, 로마에서 장례식 거행
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(138-78BC)
▶ 로마공화정의 영향력 높은 귀족 가문 코르넬리우스 출신.
▶ 코르넬리우스가문은 그가 태어났을 당시에는 몰락하여 정치적으로 큰 주목을 받지는
못하는 상태.
▶ 젊은 시절을 로마의 하층민들과 보냈으며 메트로비우스라는 당대의 배우를 만나 평생
함께 했다고 한다. 비록 젊은 시절을 방탕하게 보내긴 했지만 술라는 유창한 그리스어를 구사했고 훌륭한 교육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.
▶ 원래는 어느 파당에도 안 속하고 고집 센 개인주의자
▶ 마리우스가 Populares의 편에서 선출되자 원로원 파로 감
▶ 군대를 이끌고 로마로 진군 (최초의 사례)
▶ 지휘관에 불복종해서 반란 (최초의 사례)
▶ 로마에서 내전 시작 (최초의 사례)
▶ 그의 정적 살해 - 마리우스는 아프리카로 간신히 도망감
▶ 술라는 로마의 제 1인자가 됨
술라가 동방 정복에 나서자 로마에서 반란 이후 로마를 4년간 지배한 자는 귀족 Cinna
▶ 술라는 그를 위해 일한 자는 끝까지 보상
* 몰수된 재산은 경매
* 공헌한 노예는 해방 + 현금
술라의 등장 배경
▶ 그리스와 아시아에서의 전쟁을 술라가 지휘
▶ Mithridates를 상대로 하여 소아시아에서도 승리
보상금으로 엄청난 재산 얻음; Mithridates와 화해 (기원전 85년)
그러나 그는 로마에 진군할 재정은 없음
▶ 마리우스 사망; 술라는 기회를 잡음
▶ 술라의 이탈리아 재정복 (83 BC)
83 BC: 이탈리아 정복
82 BC: 로마 시로 진군, 정적 살해
▶정적 추적을 위해 심복 Gnaeus Pompey를 아프리카로 파견
▶술라는 폼페이우스에게 "Magnus"칭호 줌
▶The Proscriptions(살생부) 이탈리아 인 치죄
술라의 경호대 1만 명이 proscribe
명단에 있는 자를 체포하거나 직접 살해한 자는 보상받음
명단에 있는 자의 가솔도 보복 대상
술라의 국제개혁
▶ Dictator부활: 기원전 3세기에 폐지된 dictator(독재자)위치부활
술라는 임기 없음(최초의 선례)
▶ 군대 힘으로 로마국제개정: 로마역사상 최초의 논리적 헌법
▶ 군사개혁: 로마직할령(루비콘강이남)에는 군단을 이끌고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군단을 가지는 전직 집정관, 법무관은 반드시 원로원이 결정하게 함
▶ 원로원개혁: 원로원수를 600명으로 하고 권한을 강화함
▶ 복지문제: 가이우스그라쿠스가 시작한 곡물법을 폐지하여 무산계급의 이익을 떨어뜨리 고 식민 도시에 퇴역병을 이주시킴.
▶ 사법개혁: 그라쿠스형제 이후 기사계급으로 구성되던 배심원을 다시 원로원의원으로만 구성함
▶ 호민관개혁 :호민관직에 있는 사람은 다른 관직에 취임할 수 없게 하고 연임은 10년의 휴식기가 있게 함
술라의 말년
▶ 스스로 독재자 직위에서 물러서고, 대신consul이 됨(기원전80년)
▶ Campania로 하야, 1년 후인 기원전 78년에 사망
▶ 많은 피를 요구하였으나 사망 후 군림하기 직전으로 모든 것이 원상 복귀 됨
평가
▶ 친구와 적을 영원히 잊지 않았던 사람
▶ 시계바늘을 뒤로 돌리려 했던 사람
▶ 그의 공포적인 행동으로 로마 사에서 잊혀 지지 않는 사람
▶ 고대와 현대의 여러 문필가들은 "선한의도로 시작했으나 악한행동으로 일을 처리 했던" 술라라고 평가
▶ 현대 학자들의 견해는 술라를 수수께끼의 인물로 보는 관점(그가 사임한 사실 때문에) 에서 벗어나 이제는 그를 군주 또는 성실한 개혁가로 간주하는 시각이 많아짐
원로파 민중파
원로원파 |
민중파 | |
대표 인물 |
술라, 키케로 |
카이사르, 마리우스 |
정치적인 결정 |
원로원의 권위가 최우선시 |
원로원보다는 민회의 결정 우선시 |
구성 |
귀족계층 |
원로원의 일부 기사신분, 기타 평민계층 |
주요 업무 |
집정관의 결정에 조언, 충고, 권고의 역활 |
민리 증진을 위한 사회개혁 활동 |
원로원파와 민중파가 생겨난 원인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 활동에 의한 것으로서 그라쿠스 형제는 민중의 기관인 호민관과 민회를 이용하여 개혁을 시도하다 실패하였으나 이는 후에 민중파가 생겨나게 된 원인이 됨 |